공부에 손 놓은 아이, 화내지 말고 이렇게

공부에 손 놓은 아이, 화내지 말고 이렇게
공부에 손 놓은 아이, 화내지 말고 이렇게

김지혜 전문코치

 출산 전에 자기주도학습코치로 일했던 저는 ‘사교육 뺑뺑이 돌리지 않고 자기주도학습 습관 길러 줘야지’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에게 적용하기엔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첫째가 초등 1학년쯤, 아이가 어려워하는 수학 공부를 도와주었는데 더하기 빼기 같은 초간단 문제도 이해를 못하고, 며칠 지나면 또 까먹곤 하더군요. ‘아니 왜 이런 것도 몰라!’ 싶어 자연스럽게 언성이 높아지고 눈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밑으로 아이들이 더 생기고 일은 바빠지니 아이들 공부 지도에 시간을 내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점점 자기주도학습이 아닌 ‘방치’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붙들고 공부를 봐주면 화가 나고, 그렇다고 ‘알아서 하라’고 놔두면 불안하고, 학원을 보내 놓으면 다른 친구들 점수 깔아주고. 많은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요. ‘공부’는 어쩌다 이렇게 부모들의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걸까요? 아이가 크면 더 쉬워질까요?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교육열 높은 지역 중학생 엄마들의 하소연입니다. 10년 넘게 아이 학습에 정성을 쏟아 왔건만, 그들이 도착한 지점은 인서울은 택도 없는 성적. 먹는 거, 입는 거 참고, 노후를 위한 준비도 못한 채 소득의 20%를 아이들 공부에 쏟았는데, 아이가 들어본 적도 없는 대학을 가게 생겼다니? 그나마 아이가 진지하면 희망이라도 있겠는데, 아이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뒷전으로 빠져 있습니다.

 스스로 하지 않는 아이,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시험 진도 모르는 아이, 게임과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는 아이, 비싼 학원 빼먹고 거짓말하는 아이. 아마 뒷목 잡고 괴로워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실 거예요. 과연 어디까지 받아 줘야할까요? 참는 것이 상책일까요? 아니면 더 세게 혼을 내야 할까요?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킬지를 논하기 전에, 왜 우리가 이렇게 화나게 되는지부터 짚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아무 때나 화나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핏대를 세우고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날 때 우리 마음에선 이런 생각들이 요동을 칩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우리에겐 아이의 공부에 대한 기대가 있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부모는 화가 치솟습니다. 부모는

 이런 기대에는 잘못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고, 아이를 좋은 곳으로 이끌고 싶고, 아이에게 좋은 부모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 더 아래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기대를 하고, 기대를 하기에 잔소리도, 강요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 사랑하는 마음이 사랑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일정 수준의 대학을 가려면 일정 수준의 성적이 나와야 하고, 그걸 위해 학년에 맞는 적당한 학원을 다녀야 하고, 그렇게 먼 미래의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역순으로 내려온 계산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계획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밥벌이 이상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라는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 ‘초등학교 5학년이면 중학교 1학년 선행은 마쳐야지. 그러려면 최소한 월수금 3시간 학원 수업은 들어 줘야지’라는 폭력으로 둔갑하는 순간입니다.

 아이와 싸울 것인지, 아이를 포기할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먼저 이 싸움의 시작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 시작은 단연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에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바뀌어야 합니다. ‘공부 못하는 우리 애, 어떻게 공부시키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내 아이, 내가 무엇을 (안) 하면, 공부 습관을 익힐 수 있을까?’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 아이가 공부에 손 놓은 지경에 이른 과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선, ‘공부량이 과해서’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 열에 아홉이 사교육을 받고 있고, 학원 뺑뺑이를 도느 라 제 시간에 식사조차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학원을 다니는 이유는 돌봄 공백을 채우거나, 놀 친구가 없어서 등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유가 무엇이건 아이들은 여가와 놀이 시간이 없이 학원에 매입니다. 사교육은 영유아 시기까지 내려와서 영어 유치원에 들어가려 4세부터 레벨 테스트를 받는 ‘4세 고시’라는 말까지 나왔고, 취학 전 6세 아동의 88%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어른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을 때다 놓고 싶은 것처럼, 아이들도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공부 앞에서 질려 버렸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감이 없어서입니다. 지나친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은, 아는 문제보다 모르는 문제가 많습니다. 모르는 문제들 앞에서 아이가 자신감을 쌓아 나갈 수 있을까요? 자신감이 없는 아이는 집중할 수 없고, 집중하지 못하니 결과가 좋을 수가 없고, 결과가 좋지 않으니 자신감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추상적인 사고가 미숙한 초등 저학년 아이들을 하루 두세 시간씩 수학 학원에 앉혀 놓으면? ‘수포자’로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세 번째는 ‘바른 습관 형성이 안 되어서’입니다. 학교 다녀와서 일정 시간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는 습관은 장기간에 걸쳐 인내심을 가지고 길러줘야 하는 중요한 습관이지만, 이걸 잘 해내는 부모가 많지 않습니다. 독재형 부모는 매섭게 아이를 혼냅니다. 아이는 혼나기 싫어 공부하게 됩니다. 허용형 부모는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너무 쉽게 기준을 꺾거나 보상을 줘 버립니다. 이때 아이는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방임형 부모는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믿고 맡겨 버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학교 숙제가 뭔지, 숙제는 어떻게 하는 건지, 시험 준비는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른 채로 시간만 흘러가 버립니다.

 아이라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지치고, 해 봤자 안 될 것 같고, 방법도
모르겠으니 등을 돌리는 거지요. 100살 넘게 팔팔하게 살아갈 우리 아이들, 인공지능과 겨뤄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는 평생 해 나가야 할 중요한 영역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본래 배움에 대한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 기억을 되살려 보세요. 온 방을 기어 다니며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만져 보고 입에 넣어보고 탐색 하던 7개월 무렵의 아기.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자기가 관심 있는 레고 통에 다가가는 돌이 지난 아기, 장황한 공룡 이름을 막힘없이 외우며 각 공룡의 특색을 설명하던 다섯 살 아기. 발레나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던, 책을 사달라던 호기심 가득했던 여섯 살 아기···.

 아이가 기본적으로 가진 학습과 성장에 대한 열망을 어른들이 전집으로, 영어 유치원으로, 학습지와 학원으로 훼손시켜 버린 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미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이 “공부 싫어.”, “난 공부 잘 못 해”라며 부정적 공부 정서를 갖게 된 거죠.

 초등과 비교할 수 없이 학습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난이도가 높아지는 중학교 이후에도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기 위해 초등학교 때는 어떤 것을 준비하면 좋을까요? 사회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 발달을 8단계로 나누었는데, 초등 시기는 본격적으로 ‘근면함’을 훈련하는 시기입니다. 영유아 시기에는 아이에게 성실함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호기심으로 발레를 시작했다가 힘들면 한달 만에 끊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초등 시기에는 하기로 한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꾸준히 하도록 가르치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잘 되어 있어야 중학생 이후 ‘정체성’을 수립이라는 발달 단계로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초등 시기에 가르쳐야 할 근면함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복습: 사교육보다, 문제집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 수업입니다. 1학년 입학할 때부터 아이에게 가장 강조할 것은 1)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듣기 2) 집에 와서 숙제 먼저 하기 3) 그날 수업은 그날 복습하기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가 되면 책상에 앉아 혼자서 1시간 정도 자기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원은 그 다음입니다. 절대로 선행과 과한 문제집으로 아이를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무기력한 아이를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2 ‌규칙적인 생활습관: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정한 시간에 먹고, 일정한 시간 몸을 움직이는 생활습관을 만들어 주세요. OECD 국가들 중 대한민국만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면시간이 부족한 나라가 없습니다. 이 중에서도 충분한 수면은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뿐만 아니라, 정서적, 인지적 발달도 좌우합니다. 잘 잔 아이가 마음도 편안하고, 집중도 잘합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또는 불규칙하게 잠들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지금 가정에서 아이들 자는 시간이 일정치 않다면, 부모가 정해서 가르쳐 주세요.

3 ‌스마트폰 절제: 스마트폰은 어른도 절제가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까지 빠질 줄 몰랐다’고 사 준 뒤에야 후회하는 부모님들이 많은데요. 일단 사 주면 아이들과 싸울 일이 늘어난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또한 ‘알아서 하겠지’라고 믿고 맡겨 두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사 주기 전에 반드시 규칙을 먼저 정해야 합니다. 하루 사용 시간 총량과 사용 시간대, 지키지 않았을 경우의 벌칙을 정한 뒤 사 줘야 하고, 그 규칙을 지켰을 때 칭찬해 주고, 지키지 않았을 때 사전 예고한 벌칙을 적용해 주세요.

 이런 습관이 탄탄히 자리 잡을 때 아이는 마음에서 ‘공부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끌어내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그 위에 얹을 수 있습니다. 지나친 선행과 과한 사교육, 그로 인한 부정적 공부 정서와 훼손된 유능감을 가진 아이에게 좋은 문제집을 얹어 준들, 유명 강사를 연결해 준들, 암기법을 가르쳐 준들, “엄마 봐서라도 공부해야지”라고 통사정해 준들 튕겨 나올 뿐 입니다.

 과열된 경쟁 속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불안에 쫓기지 않고 아이에 대한 신뢰감과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공부를 지도하려면 본질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저 역시 아이 셋의 엄마로서 조급함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는 문장들이 있는데요. 그 문장을 독자님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보세요.

  • 공부 못한다고 인생 망치는 것이 아니다(언제나 살 길은 있다).
  • 지금 못한다고 영영 못하는 것이 아니다(마음 먹고 연습하면 못할 것이 없다).
  • 당장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성실한 습관이다(과정에 충실하면 결과는 따라온다).
  •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다(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게 도와주자).
  • 공부 못하는 아이에겐 다른 강점이 있다(세상 누구도 모르는 아이의 보석에 눈 맞추는 존재가 바로 부모다).
  • 불안감에 쫓겨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시킨다).
  • 공부는 아이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내가 억지로 시킬 수 없다).

김지혜 전문코치
 지혜코치. 8년간 1만 명의 엄마를 만난 부모교육 전문가입니다. 《하루 한 시간 엄마의 시간》, 《엄마의 화코칭》두 권의 책을 썼으며 ‘엄마표 감정 코칭’을 실천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혜코치의 엄마고민상담소’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11살 딸, 4살 쌍둥이 아들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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