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등급에서 시작할 용기

금성신 팀장
상상코칭 진학전략연구소

매년 1월부터 3월, 교육 현장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입니다. 이제 막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단 아이들이 뒤늦게 공부를 해 보겠다며 문을 두드리기 때문입니다. 이미 1학년과 2학년은 이리저리 흘려 보낸 채 말이죠.

‘진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도 잠시,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의욕은 넘치는데 하루에 단 한 과목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요?

제가 15년 동안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를 만난 경험에서 발견한 건, 역설적이게도 아이의 ‘잘못된 단추’는 부모의 ‘완벽한 케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많은 부모님이 아이가 실패를 경험하지 않게 하려고 미리 길을 닦아 줍니다. 부모가 짜 준 완벽한 커리큘럼 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아이들은 겉보기에 완벽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패’를 마주할 때, 완벽함은 금세 흔들리고 맙니다.

한 번도 넘어져 본 적 없는 아이는 작은 돌부리에도 ‘회피’라는 카드를 꺼내 듭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죠. 적절한 시기에 겪어야 할 ‘작은 실패’가 아이의 정신적 면역력을 키워 주는데, 우리는 그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실패를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명 강사의 인강이나 대형 학원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강의를 보고 있는 것,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화면 속 스타 강사가 풀어 주는 문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그 강사의 실력이지, 아이의 실력이 아닙니다.

이런 착각이 쌓이다 보면 아이는 성적표에 찍힌 점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운이 없어서”, “실수해서”라고 변명하며 자기 객관화를 거부합니다.

실력이 5등급인 아이가 자기 자리에서 시작할 용기가 없으니, 자꾸만 제 실력보다 높은 수업에 앉아 시간만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의 실력은 보는 것만으로는 자라지 않는다

제가 만난 학생 중 고1 때 수학 7등급이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7등급, 충분히 ‘못한다’고 부를 만한 실력이죠. 다만, 이 친구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마음가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못난 점수’를 인정하는 용기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더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이 친구는 저와 함께 중학교 1학년 개념서를 펼쳤습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죠. 결국 이 학생은 고3 때 확률과 통계 2등급을 찍고 간호대에 합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의 힘입니다.

실패를 공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SNS나 미디어로 타인의 화려한 모습만 보며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화려한 보정 필터가 아니라 ‘필터 없는 내 성적표’를 직시하는 용기입니다.

물론, 아이가 실패를 경험할 때, 아이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부모 역시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성적표가 없는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중학교 1학년 첫 시험지를 보고 “배신당했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아이를 한 번 믿고 기다려 주세요. 아이가 방황하고 실패할 때, 그 실패를 대신 치워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장면을 묵묵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가 5등급에서 시작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먼저 실패에 관대한 지지자가 되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잘못 끼운 단추는 다시 끼울 수 있습니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육의 정답은 아이의 마음 근육을 키워 주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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