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만 코치
쿼바디스1318 코칭상담연구소 대표 코치
제가 예전에 만났던, 서울 강남 지역의 어느 중2 여학생 이야기입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평균 80점을 맞고, 엄마에게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해서 저를 만나게 된 학생이었습니다. 평균이 80점이면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학생 스스로가 기대하는 수준과 너무 차이가 나다 보니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밀려왔던 것입니다.
저는 이 학생과의 만남 초기에 공부 자체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꿈과 진로, 강점과 열정 같은 주제로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 학생 마음속에는 제가 의도한 대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서서히 배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학생은 1학기 기말고사를 치렀습니다. 평균은 84점으로 겨우 4점이 올랐고, 전교등수는 9등이 오르는 데 그치고 말았죠. 하지만 이 친구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성적표를 받은 날 엄마에게 “엄마, 나 그래도 9등 올랐어.”하고 나름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죠. 그런데 엄마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그래서 벌써 만족스럽냐? 그 정도로 퍽 만족스럽겠구나.” 하는 식의 핀잔을 들었지요.
그런 일을 겪고 나서 풀이 죽은 채로 코칭을 받으러 왔습니다.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친구에게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지요.
그런데 성적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금방 떠올랐습니다.
저는 성적표를 보면서 “네가 생각하기에 제일 잘한 과목이 무엇인 것 같아?”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도덕이라더군요. 도덕만 90점을 넘었거든요. 그런데 제겐 과학이 눈에 띄었습니다. 과학이 60점대에서 80점대로 20점이나 올랐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과학 이야기를 꺼냈지요.
“ 과학을 20점씩이나 올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때? 과학을 20점씩이나 올리는 게 쉬운 일이니, 어려운 일이니?”
“(입가에 약간 미소를 띤 채로 조금은 머뭇거리며) 어려운 일 아닌가요?”
“그렇지. 당연히 어려운 일이지. 너희 반에서 너처럼 과학을 20점씩 올린 친구가 또 있을까?”
“(미소가 점점 짙어지며) 글쎄요. 아마 없을 거예요.”
“그렇지? 내 생각에도 없을 것 같은데. 과학을 20점씩이나 올린다는 게 네 생각에는 능력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며) 능력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면 과학을 20점씩이나 올린 사람이 공부를 잘할 만한 사람이야, 잘하기 힘든 사람이야?”
“(밝은 표정으로) 잘할 만한 사람인 것 같은데요.”
이 대화의 분위기를 글로 더 생생히 전달하기 어려운 게 아쉽네요. 이 대화를 나누고 나서 어두운 기운에서 완전히 벗어나 환하게 웃던 그 학생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로부터 2달쯤 지난 후, 드디어 2학기 중간고사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에서 이 학생은 평균 94점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공부 방법은 1학기와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성적향상의 비결은 오직 자신감이었습니다. ‘나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이 학생의 성적향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렇게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교육심리학 용어로는 학업적 자기효능감이라고 합니다.
학업적 자기효능감을 높이려면 실제 성공 경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공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성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실패가 될 수 있지요.
이 학생은 자신이 실패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저는 그 상황 속에서 성공을 찾아 이 학생에게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성적표를 보니 과학에서의 성공이 보였지요.
이렇게 성공을 인식하게 해 주면서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인 힘을 북돋는 말, 언어적 설득으로 용기를 불어넣으니, 이 친구는 스스로에 대해 ‘나는 무능하고 공부도 잘하기 힘든, 별것 아닌 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나도 능력 있고 잘할 수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효능감이 실제 성적향상으로 이어진 것이죠.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데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다른 사람의 성공을 관찰하는 대리경험도 큰 힘이 됩니다. 우리 아이에게도 이런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지금 이 글을 읽으셨다면, 이 학생의 사례를 좋은 대리 경험으로 삼아 자녀를 격려해 주세요.
“자녀의 작은 성공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힘을 북돋는 말로 격려해 줄 때,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점점 솟아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