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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숨은 무기, 감정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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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AI가 일상의 질문에 빠르게 답해 주는 시대일수록 아이에게 더 필요한 힘은 감정을 알아차리고 관계 안에서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감정지능은 타고나는 성향만이 아니라 부모와의 대화 속에서 길러질 수 있는 역량입니다.

이은숙
라이프가드닝 교육연구소 소장

“양배추를 가지고 한 그릇 덮밥을 만드는 레시피 추천해 줘”

“2박 3일 강아지와 함께 경주 여행일정을 짜려고 하는데 3가지 경로를 추천해 줘”

“여름 방학 동안 초등학교 4학년 아이와 갈 만한 전시회는 뭐가 있을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찾아야 했던 많은 정보를 이제는 수많은 AI 도구를 사용해 찾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해진 장면이 되었다.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과제를 하고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기도 전에 AI 창을 열고 질문을 한다. AI는 내가 물 한 잔 떠오기도 전에 거침없이 모든 해결책을 보여 주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제안하며 확장해 준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과 교류를 하지 않고 AI와 시간을 보내느라 생긴 여유를 이제 우리는 관계에 더 집중해야 한다. 편리함은 분명 커졌지만 그만큼 가장 인간다운 능력인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는 데 소홀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장에서 청소년과 부모, 교사들과 소통하며,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을 좌우하는 핵심 역량은 감정지능이란 확신이 점점 더 드는 요즘이다.

감정지능(Emotional Intelligence, EI)이란 무엇인가? – 인지지능을 움직이는 엔진

“우리 아이는 착해요”, “감성이 풍부해요”라는 것이 감정지능이 높은 것은 아니다. 감정지능은 심리학자 피터 살로베이(Peter Salovey)와 존 메이어(John Mayer)가 처음 정립하고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에 의해 대중화된 개념이다. 이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조절하며,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정교한 인지적 능력을 말한다.

코칭심리학에서는 4가지 핵심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자기 인식 Self-Awareness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

자기 조절 Self-Regulation

충동을 억제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

사회적 인식 Social Awareness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비언어적 신호를 읽는 것.

관계 관리 Relationship Management

갈등을 해결하고 협력하는 능력.

쉽게 이야기하면, 내 마음의 상태를 잘 인지하고, 관계 안에서 흔들리지 않게 다루는 능력을 말한다. 감성이 풍부한 아이가 아니라, 감정이 강렬하게 느껴져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건강하게 표현하며 조절할 줄 아는 아이가 감정지능이 높은 것이다.

AI 시대, 왜 우리 아이들의 감정지능은 낮아지는가?

진로코칭이나 사회정서프로그램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그 어느 세대보다 도구는 잘 활용하는 것 같지만 기본적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에 직면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직접적인 감정 교류가 줄어들고 눈맞춤이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국내외 연구에서, 스마트 기기 노출 시간이 길수록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감정 단어 선택을 어려워하는 ‘정서적 실어증’ 증세가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는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현상이다.

디지털 휘발성 소통

간단한 텍스트와 빠른 화면, 이모티콘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상대의 표정 변화나 목소리 톤 등 비언어적인 신호와 교류를 할 기회를 박탈해 뇌의 공감 회로인 ‘거울 뉴런’이 충분히 자극받지 못하게 한다.

즉각적 보상에 익숙함

즉시 만족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위주의 콘텐츠는 우리 아이들의 인내심을 사라지게 한다. 기다리며 느끼는 ‘지연된 만족’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면서 조금만 불편하고 좌절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분노로 폭발하게 된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아무렇지 않게 가는 학생들이(심지어 고등학교에서) 4-5명씩 있다.

내가 원하는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

다양한 내용을 골고루 접하는 것이 아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속에서 나와 다른 관심사와 감정을 이해할 기회를 잃어 가고 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구체적 감정지능 훈련법

코로나 시기에 나왔던 연구들에서 부모와 가족이 청소년들의 감정지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부모의 감정지능과 양육태도가 특히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감정지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학습되는 근육이라 말한다.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된다면 청소년기에도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는 훈련이다.

하지만 감정지능 훈련을 갑자기 청소년기에 하려고 하면 어색해질 수 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어색하지만 노력하려고 하는 부모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전달됨을 잊지 말자.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감정을 바로 고쳐주려 하거나 행동을 지적하며 화내지 않는 것이다.

  1. 감정 라벨링 Emotion Labeling

    아이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구체적인 단어로 정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감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들도 스스로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미성숙하게 행동하고 표현함을 잊지 말자. 따라서 부모는 먼저 “우리 아이가 나를 괴롭히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라는 객관화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기보다

    “왜 또 짜증이야?”

    “그만 좀 예민하게 굴어”

    이렇게 말해 보세요

    “친구가 네 물건을 말도 없이 가져가 써서 당황하고 속상했구나.”

    “친구들이 너를 빼고 이야기하고 놀러 가서 서운하고 마음 아팠겠네.”

    그리고 부모가 그 감정을 단정 짓지 않고 “지금 기분이 어떠니?”라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생각한 그 감정이 아니어도 아이는 그 감정 단어를 듣고 진짜 자신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더 세밀하게 감정을 찾아 인식할 수 있다. 부모는 질문을 하며 탐색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아이가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다.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났어.” 하면서 말문을 열 수 있다.

  2. 감정은 수용하되, 행동은 한계 지어주기

    많은 부모님이 감정을 받아주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만 중요한 아이로 방향이 잘못 흘러가기도 한다. 핵심은 감정은 받아주지만 행동은 분리해 알려 주는 것이다.

    감정은 수용하고

    “화가 날 수는 있지. 엄마도 그랬을 것 같아.”(수용)

    행동에는 한계를 알려 주세요

    “하지만 화가 난다고 이렇게 동생을 밀치거나 다치게 하는 건 안 돼.”(한계 지어주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존중받는 동시에, 감정을 다스리며 ‘사회적 규칙’을 배워 나간다. 가족 안에서 규칙이 있다면 함께 지켜 가는 게 중요하다. 아이에게는 식사시간에 핸드폰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부모님이 보고 있다면 실행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3. 문제 해결을 위한 질문 던지기

    우리는 아이의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 빠른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 주자. 감정을 먼저 공감 받아야 문제 해결과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전두엽이 제대로 활성화될 수 있다.

    질문으로 선택을 도와주세요

    “그 기분을 좀 가라앉히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 상황에서 엄마가 도와주는 게 나을까, 아니면 스스로 먼저 해 보고 싶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떤 걸 먼저 해 주면 될까?”

    한계가 없는 해결책이 아닌 지금 이 상황에서 가능한 범위를 말해 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해 주자. 그렇지 않고 제한 없는 선택권을 주면 또 아이에게 끌려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감정을 공감 받고 나면 대부분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게 된다.

    내가 큰소리로 잔소리하며 길게 이야기한다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바뀐 적이 있던가? 이미 잘못한 것을 알고 있는데 계속 그 부분을 얼굴 볼 때마다 이야기한다면 아이들과의 관계는 더 멀어질 뿐이다.

감정지능이 높은 아이의 변화

감정지능이 높은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높은 자기주도성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기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활용.

탁월한 협업 능력

AI가 해 줄 수 없는 팀작업이나 조율을 하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가짐.

높은 심리적 안녕

외부의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문제가 생겨도 빠르게 회복함.

예전에 내가 영어를 지도했던 고1 남학생 A는 모의고사를 치른 후 가족에게 짜증이 늘었다. 아니면 하교 후 정말 잠만 자다가 아침에 학교도 겨우 가는 상황이 이어졌다. 처음엔 핸드폰 때문이라고 생각해 부모와 갈등이 이어졌는데 감정 카드를 활용해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학업에 대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점점 더 불안해지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짜증을 내거나 회피하는 모습으로 반응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머님께서 애가 타서 나와 긴 시간 상담을 여러 차례 하셨다. 몇 가지 힌트를 드리니 어머님께서 이런 시도를 해 보셨다고 한다.

학원도 빠지지 않고 주말에 친구들도 안 만나며(관찰한 내용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좋다) 노력했는데 성적이 떨어져서 당황하고 자존심이 상했겠구나. 결과가 생각처럼 안 나와 속상했을 것 같아.”

“그러니 더 열심히 해!”(그동안 했던 반응)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좀 쉬며 위로가 필요한지 아니면 계획을 새롭게 세우고 싶은지 오늘 저녁까지 한번 생각해 보고 이야기해 줘”라고 물었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번 주말까진 좀 쉬고 싶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계획표 작성해 볼게.”

아이들은 스스로 그 감정이 무엇인지, 그 감정이 어떤 욕구에서 온 것인지 알지 못하기에 우리의 관점으로 보기에 문제 행동으로 보이는 반응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행동이 우리에게 도와 달라는, 알아 달라는 신호일지 모른다. 그 기회를 잘 관찰하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반응하지 말고 감정코칭을 활용해 잘 대응할 수 있는 기회로 포착해 보자. 물론 그 이전에 부모 스스로의 감정을 잘 인지해야 부모 또한 그 상황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TV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에 김애란 작가가 출연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한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인간에게는 있고 AI에게는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망설임’이다.

누군가의 고민, 아픔을 들을 때 상대방을 위해 말을 삼키고 주저하는 순간, 짐작하고 헤아리는 그 찰나가 있다. 그 주저함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 배려나 품위가 있다. 그게 어느 때에는 유려하고 빠른 AI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된 적도 있다.

김애란 작가는 인간의 결함은 한계가 아닌 미덕이자 개성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다가 눈에 드러난 어떤 행동을 보고 즉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길 바라는 의도로 어떨 때는 AI의 답보다 빠르게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그럴 때일수록 행동 너머에 있는 그 아이의 진짜 감정, 욕구를 들여다보려는 침묵을 선택하고, 존재로 성장하게 될 그 아이를 위해 어떤 대응을 해 주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참 의미 있는 간극이 될 것이다.

AI의 즉시성이 익숙한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나의 감정과 욕구를 스스로 먼저 잘 인지하고 공유하며 건강하게 표현하는 솔직함과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겐 필요할지 모른다. 그리고 부모인 나의 결함 또한 감추고 외면하는 것이 아닌 드러낼 수 있는 인간다움이 선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 저렇게 표현해도 되는구나. 여긴 그것을 드러내도 안전한 곳이구나.’를 알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중요할 수도 있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그 안에서 표현하고 공유하며 서로 연결됨이 여전히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임을 먼저 보여주는 것을 잊지 말자.

이제 ‘왜 나는 우리 아이를 감정지능이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어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이은숙 라이프가드닝 교육연구소 소장
저서 《서랍에 둔 나를 찾았습니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가꾸는 것입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당신만의 고유한 감정을 돌볼 때, 우리 삶은 비로도 나다운 빛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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