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항상 불안해 할까?

서은영
심리학 박사
자람과 공감 부소장(상담코칭파트)

저녁 일곱 시. 아이가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학원을 다녀왔고, 가방은 현관에 던져져 있습니다. 숙제는 아직입니다.

“너 방학 때처럼 놀고만 있을 거야? 숙제는 했어?”

한마디를 꺼내는 순간, 아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맨날 같은 소리”라고 받아칩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어느새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결국 방문이 쾅 닫힙니다.

거실에 혼자 남은 당신.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집어 드는데, 단톡방에는 또 누군가의 학원 이야기와 선행 진도 인증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 순간 밀려오는 감정이 단순한 짜증인지, 불안인지, 아니면 ‘나는 부모로서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묘한 죄책감인지 쉽게 구분이 안 됩니다.

“저만 이러는 건가요? 다른 부모는 다 잘하는 것 같은데.”

이런 불안함은 당신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먼저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안, 어디서 왔을까?

불안의 뿌리를 들여다보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아주 인간적인 반응’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안의 뿌리를 찾아 보자

뿌리 ❶ 불안해지면 뇌는 ‘통제’를 찾는다

우리 뇌는 불확실한 것을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앞이 예측되지 않으면 뇌는 자동으로 그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행동을 촉구합니다.

부모에게 이 본능은 정보를 찾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찾은 정보가 내 안의 확신과 만날 때는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확신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정보를 마주하면, 같은 정보도 다르게 작동합니다.

확신이 있을 경우
정보 참고 안심
확신이 흔들릴 경우
정보 비교 더 불안

분명 아이를 지원해 주기 위해 찾았던 정보가 어느새 ‘내가 더 일찍 알아봤어야 했는데’라는 자책으로 이어지지요.

이 불편함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애초의 따뜻했던 마음을 점점 멀어지게 만듭니다. 당신이 유난히 흔들리는 게 아닙니다. 어떤 부모라도 이 흐름 속에서는 처음에 걷고자 했던 길을 잃기 쉽습니다.

뿌리 ❷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오는 불안

아이가 걱정될 때, 그 감정의 아래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지금 이 상황’에 대한 걱정만은 아닐 때가 많습니다.

‘내가 뭔가를 놓쳐서, 나중에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선행을 안 시킨 것, 학원을 늦게 보낸 것, 진작 챙겨 주지 못한 것. 이 두려움은 지금의 선택이 아이의 미래 전체를 결정할 것 같다는 느낌에서 옵니다.

그 불안이 클수록,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예상보다 강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과하게 반응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부족한 부모의 증거가 아닙니다. 아이가 힘들어지는 것을 미리 막고 싶다는, 조금 서툴게 표현된 사랑일 수 있습니다.

부모인 나의 좋은 마음이, 짐이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뿌리 ❸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때로 무거운 짐이 된다

아이를 바르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 당연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믿음과 합쳐질 때, 어느 순간 짐이 됩니다.

아이의 성적이 오르면 안도하고, 떨어지면 내 탓을 먼저 합니다. 아이의 결과가 내 양육의 성적표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계획대로만 자라지 않습니다. ‘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과 ‘아이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현실 사이, 그 틈새에서 자책이 자라납니다.

뿌리 ❹ 통제를 놓아야 할 때일수록, 더 쥐게 되는 역설

사춘기 아이의 성장은 본질적으로 ‘부모가 조금씩 통제를 내려놓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불안해질수록 통제를 더 강하게 쥐려 하고, 그럴수록 아이는 더 강하게 저항합니다.

불안 → 통제 → 저항 → 더 큰 불안의 순환입니다. 이 순환을 멈추는 것은 통제를 더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 곁에서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서면 돼’라는 믿음을 아이에게 꾸준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심리적 안전감이 아이가 자기 앞길을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의 뿌리가 됩니다.

이렇게 보면, 조금 달라집니다

불안의 뿌리를 알고 나면, 같은 상황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처방이 아니라, 시각이 살짝 이동하는 것입니다.

시각 이동 ❶ 단톡방이 보여 주는 것과 감추는 것

여러 단톡방에 올라오는 정보들은 언제나 ‘가장 잘 된 결과’입니다. 수상 소식, 합격 후기, 레벨 테스트 통과···. 그 뒤에서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부모가 얼마나 지쳤는지는 올라오지 않습니다.

내 아이의 날 것의 일상과 남의 아이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비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한 번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단톡방이 주는 불안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집니다.

문을 두드릴 수 있다면, 우린 충분히 잘하고 있다

시각 이동 ❷ 다시 문을 두드릴 수 있다면

아동정신분석학자 위니콧(Winnicott)은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라고 했습니다. 위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방문이 잠긴 그 순간, 아이는 방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요. 화가 납니다. 억울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조금 무섭습니다. 관계가 이대로 끊긴 채 밤이 지나가는 것도 두렵지만, 먼저 나오는 법을 모릅니다.

그때 부모가 문을 두드립니다. 아이에게 그 소리는 단순한 노크가 아닙니다. ‘우리 사이는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신호입니다. 아이가 “됐어”라고 퉁명스럽게 받아쳐도, 그 소리는 이미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쌓일 때 아이는 배웁니다. 관계는 싸워도 다시 이어질 수 있고, 실수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요.

완벽하게 화를 참는 부모보다, 화를 냈지만 다시 문을 두드리는 부모가 아이의 마음속에 더 깊이 남습니다.

시각 이동 ❸ 통제에서 신뢰로

통제의 반대말은 방치가 아닙니다. 신뢰입니다.

‘잘 키워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 마음의 방향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이의 결과를 관리하는 것에서, 아이가 스스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것으로.

내면의 닻 내리기 — 상황별 코칭 질문

불안이 밀려올 때, 외부에서 정보를 찾기 전에 먼저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조용히 던져 보세요. 정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잠깐 멈추고 내 안을 들여다보는 연습입니다.

단톡방을 보고 나서 마음이 흔들릴 때
– ‘지금 내가 불안한 것은 내 아이 때문인가, 아니면 사회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기준 때문인가?’
* 단톡방을 닫고, 오늘 아이와 나눈 대화 중 가장 솔직했던 순간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밤에 자책이 밀려올 때
– ‘오늘 나는 아이 곁에 있었는가? 관리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곁에 있는 사람으로서?’
* 학원, 성적과 무관하게 오늘 아이와 연결된 순간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이와 충돌한 직후
– 10분을 기다리세요. 감정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의 사과는 또 다른 충돌이 될 수 있습니다.
– “엄마(아빠)가 아까 너무 크게 얘기했어. 미안해. 너도 힘들텐데….”
* 아이가 바로 반응하지 않아도 실망하지 마세요. 방문을 두드렸다는 것 자체가 관계의 씨앗이 됩니다.

오늘의 당신은 충분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에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진짜 마음을 이해하려는 시간을 낸 것만으로 오늘의 당신은 이미 충분합니다.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목표가 아닙니다. 불안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끌려다니지 않는 것, 그것이 시작입니다.

오늘도 방문이 닫혔더라도 괜찮습니다. 내일 아침, “잘 잤어?” 하고 먼저 말을 거는 당신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꽤 괜찮은 부모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5분만 시간을 내어 아래 문장을 완성해 보세요. 쓰는 행위 자체가 자책에서 자기 수용으로 넘어가는, 조용하고 강력한 통로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순간에 가장 불안했나요?
그 불안의 뿌리는 어디에 가깝다고 느껴지나요?
① 통제하고 싶은 본능    ② 잘못될까 봐 두려운 마음
③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    ④ 아이의 저항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오늘 내가 아이에게 한 것 중, 성적이나 학원과 무관하게 진심이었던 한 가지
내일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잘 키운다는 것은,
아이의 앞길을 대신 치워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발로 걷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 주는 것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흔들리면서도 끝내 아이 곁을 지키는 사람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서은영 박사 프로필
서은영 심리학 박사 / 자람과공감 부소장(상담코칭파트)
부모의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함께 나아가는 성장의 여정을 돕는 상담코칭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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