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전문코치
민지 씨는 요즘 5학년 아들의 욕 때문에 고민입니다. 엄마 키를 벌써 넘어선 덩치 큰 아들, 여동생이랑 싸우고 나면 꼭 욕을 하는데, 주의를 줘도 자꾸 거친 말을 합니다. 엄마한테 앞에선 조심하지만 자기들끼리 싸우며 욕을 하고, 둘째는 매번 저에게 쪼르르 달려와 이릅니다. 부모가 말을 험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이런 말은 어디서 배워서 쓰는 걸까요? 엄마를 무서워하지도 않는데, 체벌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요?
욕하는, 나쁜 말을 쓰는
아이의 심리
가장 큰 이유는 ‘나 기분 안 좋아!’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숙제 안 하고 지금까지 뭐 했어!” 라고 혼내는 엄마에게 “어쩔TV 저쩔TV”하는 깐족대는 아이, 부모는 약 올라서 뒷목 잡지만, 아이 입장에선 ‘나도 기분 나빠요’ 라는 뜻입니다. 한다고 했는데 노력한 건 안 봐주고, 잘못만 크게 지적하는 부모가 아이 입장에서 섭섭한 거죠. 상한 마음 말로 하기 서툴러 보란 듯 미운 말을 내뱉습니다.
또는 또래 관계를 형성, 유지하려는 이유도 있습니다.
다 욕을 하는데 나만 청정한 언어를 쓰기란 어렵죠. ‘우리는 친구다’라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 주기 위해 쉽게 욕을 씁니다. 어른들 눈에는 꼴사납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재미고 소통인 셈이죠.
마지막으로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들도 나쁜 말을 곧잘 씁니다.
다른 사람을 비하함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고도 하고, 또는 나쁜 말로 자신을 센 사람으로 포장해서, 자기를 보호하고자 함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쁜 말’은 여러 가지 효용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화와 짜증을 해소해 주고 친구와 무난하게 어울리게 해 주며, 아이의 기를 살려 줍니다.
아이들이 나쁜 말을 쓰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초등 1학년 교실에만 가 봐도 아직 자기 대변 처리도 못 하는 아이들이 “존나 빡치네!”를 심심치 않게 내뱉습니다. 우리 아이가 욕을 쓰지 않아도, 적어도 듣고는 있다는 뜻이죠.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말을 흡수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아이의 나쁜 말,
이렇게 가르치세요
아이가 나쁜 말을 했을 때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쓰읍’ 방울뱀 소리를 내며 “그런 말 절대 쓰면 안 돼!”라고 아이의 입을 막는 것입니다.
아이가 그 말을 쓴 이유도 모르면서 말이죠. ‘이해시키기 전에 이해할 것’, 소통과 대화의 불문율이건만, 부모님은 서둘러 결론으로 치닫습니다. “예쁜 말로 해야지.” 이때 부모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들은 모두 추상적이고 당위적입니다.
“그런 말 쓰면 큰일 나.”, “너 어디서 그런 말 배웠어. 나쁜 말이야. 하지 마.” 때론 처벌적이기도 합니다. “한 번만 그런 말 더 쓰면 혼난다.”, “네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이렇게 다짜고짜 ‘지적’만 해서는 아이가 뉘우치고 배우기 어렵습니다.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안 돼!’가 아니라, 이해와 가르침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하게 된 맥락은 이해해 주되, 쓰면 안 되는 상황을 명확히 일러주는 거죠.
“친구들에겐 되지만 어른들에겐 안 돼.”, “쉬는 시간엔 되지만 수업 시간에는 안 돼.”, “밖에서는 쓸 수 있지만 집에서는 안 돼.”와 같이 말이죠. 아울러 대안이 있어야 아이가 나쁜 말을 줄입니다.
나쁜 말을 대체할 좋은 말과 행동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세요.
1단계 – 말의 영향 알려 주기
욕이 나쁘다는 것이 어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지만, 아이에겐 상식보다 자기 감정이 먼저입니다. 아이가 툭 한 말이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말해 주세요. ‘공감’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동생한테 바보라고 하면 동생이 슬퍼해.”
“엄마한테 아이 씨, 저리 가라고 하면 엄마 화나.”
“친구한테 돼지라고 놀리면, 친구가 너를 싫어하게 돼.”
2단계 – 바른 말 알려 주기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직접적인 말을 알려 줍니다.
“바보라고 하지 말고, 내 거 만지지 말라고 말해.”
“엄마한테 아이 씨, 저리 가라고 하지 말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말해.”
“돼지라고 하지 말고, 기분 나빴다고 말해.”
너무 흥분해서 바른 말을 떠올리기 어려워하면 감정을 추스르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화가 나면 깊게 심호흡을 세 번 해.”
“짜증이 너무 올라오면 숫자를 10까지 세어 봐.”
아이가 친구의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우리 아이의 나쁜 말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아이가 나쁜 말을 들었을 때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만약 어느 날 아이가 “친구가 나 키 작다고 놀렸어. 화장실에서 동생들이랑 줄 세워 놓고 ‘야, 네가 제일 작아!’라고 했어.”라고 한다면, 뭐라고 반응하시겠어요? “뭐 그런 애가 다 있어! 걔랑 절대 놀지 마!”,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어? 한 대 쳐 주지.”, “너 바보야? 왜 아무 말도 못 했어.”와 같은 말들은 아이에게 배움을 주지 못합니다. 홧김에 손 걷어붙이고 학교에 연락부터 해 문제를 오히려 키우는 것도 곤란합니다.
아이는 이런 경우를 언제든 겪을 수 있고, 아이의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일은 실제로 저희 딸이 겪은 일인데요. 항상 반에 서 1번을 도맡아 했던 작은 체구의 딸에게 친구가 했던 말이에요. 당장 달려가 그 친구를 혼쭐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첫째에게 자기주장 훈련을 했습니다.
“엄마가 그 친구 역할을 할게, 네가 대꾸해 봐. 야 너 키 진짜 작다. 네가 동생 해야겠다.”
아이는 두 눈만 끔뻑끔뻑할 뿐, 아무 말도 못하더군요. 역할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아이는 친구를 흉내 내고 제가 아이 역할을 합니다.
“키 작아도 내가 언니야!”
“키 크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 기분 나빠”
아이는 대본을 외우듯 이런 말을 달달 외워갔습니다. 지금은 덩치 큰 친구에게 지는 법이 없습니다.
가르쳐 주면 아이들은 배웁니다. 배움과 성장은 모든 아이들의 기본값이니까요. 바쁜 부모님들을 위해 보다 직접적인 방법도 소개할게요.
책 읽기
나쁜 말 사전 – 박효미, 김재희, 사계절
툭하면 나쁜 말을 일삼던 ‘나쁜말’ 씨가 불의의 사고로 죽어 지옥에 떨어졌다. 불지옥을 피하려면 세상의 나쁜 말을 모두 잡아 오라는 염라대왕의 명에 세상으로 나간 나쁜말 씨, 병신, 대가리와 같은 비속어부터 꼰대, 학부형처럼 혐오와 차별의 나쁜 말까까지 배우게 된다. 글보다 만화가 많아 쉽게 읽을 수 있다.
나쁜 말은 재밌어 – 정란희, 에스더, 위즈덤하우스
화가 나면 늘 함부로 말하는 태성이가 주인공인 동화책. 갑자기 입에서 참을 수 없는 구린내가 나고 나쁜 말을 쓸수록 구린내가 심해진다는 설정이다. ‘고운 말 지수’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언어습관을 체크해 볼 수 있고, 상황별 고운말을 사용하는 요령,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말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실용적이다. 스토리텔링 식으로 되어 있어 고리타분하지 않고 재미있다.
나쁜 말 게임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라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게임 앱. 앱 내에서 말하기 탭을 누르고 양파에게 말을 하면, 그 말에 따라 양파가 자라기도 하고 쪼그라들기도 한다. 고운 말을 쓰면 양파가 활짝 웃으며 ‘잘하고 있어!’라는 말풍선이 뜨고, 나쁜 말을 쓰면 침울한 표정으로 ‘그런 말은 안 좋아’라고 답한다. 아이와 가볍게 즐기기 좋은 게임이다.
양파 키우기
실제로 양파를 기르는 방법이다. 두 개의 컵에 물을 담고 양파를 올린 뒤 한쪽 컵에는 ‘사랑해’, ‘잘 자라’와 같은 좋은 말을 붙여 두고, 두 번째 컵에는 ‘죽어’, ‘꺼져’와 같은 나쁜 말을 붙여 둔다. 밥으로 대체해도 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는 아니긴 하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경각심을 키우기 위해 한 번쯤은 해 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가정 내 언어 문화입니다.
혹시 아이를 “야!”라고 부르거나 “돼지야!”와 같은 별명으로 부르지는 않나요? 부부 사이에 “바보냐? 생각 좀 하면서 살아라!”와 같은 비하적인 말을 하진 않나요? 스트레스 받을 때 “X발, X 같네.”라는 말을 아이들 앞에서 무심코 하진 않나요? 아니면 아이가 보는 미디어의 연령대나 시청 시간을 제한 없이 노출시키고 있지는 않나요?
아이들은 모방의 달인입니다.
아이가 보고 듣는 것이 아이의 행동이 되지요. 아이에게 예쁜 말을 많이 쌓아 주세요. 아이의 말이 예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