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 접어든 아이, 화내지 말고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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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전문코치

사춘기 전에 충분히 잘해 주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지도 말고,
이 어두운 터널을 끝까지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결국엔 환한 태양을 만나게 될 테니까요.

 6학년 딸의 행동이 요즘 심상치 않습니다. 바쁜 아침에도 30분씩 치장을 하고, 친구들이랑 옷 사러 가더니 순식간에 20만원을 쓰고 오고, 9시 반이면 자던 아이가 밤마다 11시 넘어서까지 노닥거립니다. 말투는 또 어떻고요. 쉽게 흥분하고, 종종 ‘까칠대마왕’으로 변신합니다. 이제 사춘기가 시작되는 걸까요? 감정코칭을 비롯해 각종 대화법과 애착이론을 섭렵하며 아이에게 정성을 들여 왔지만, 아이의 사춘기는 저도 겁이 납니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걸리고, 교사 자녀가 공부에 뒤처지고, 아동발달 전문가가 육아 스트레스로 상담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걸 보면 제머리 잘 깎는 중은 별로 없거든요.

 얼마 전 부모교육에선 이제 겨우 아들이 2살인데 벌써 사춘기가 두렵다는 분을 만났습니다. 다른 엄마는 이런 말씀도 하시더군요. “중1 여자아이 키우는데요. 서로 화가 났을 때 자리를 좀 비우고 싶은데,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아이도 집을 나가는 것을 배울까 봐 걱정입니다.” 그렇게 잘 배우는 아이였다면 엄마를 이토록 화나게 하지도 않을 텐데, 얼마나 걱정되셨던 걸까요. 사춘기의 정점인 중2는 북한군도 벌벌 떨게 한다니, 어른이 되는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아이의 성장이 기쁘기보다 두렵다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빨라진 미디어 노출 시기와 신체발달로 인해 4~5학년 아이들에게도 “사춘기가 온 것 같다”라고 많이들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등학교 학부모 교육에 가면 고학년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바로 ‘사춘기’입니다. “아이가 예전 같지 않아요.”, “물어도 대꾸도 없어요.”, “방문 닫고 방에만 있어요.”, “눈빛이 달라졌어요.” “핸드폰을 너무 오래 해요. 사춘기 때문일까요?” 이에 대해 《미라클 베드 타임》의 저자, 김연수 작가는 “초등학생은 아직 사춘기란 말씀하지 마세요.”라고 일갈합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춘기 부모가
거치는 감정들

 지금 한창 아이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부모라면, 이런 감정들이 익숙하실 겁니다. 우선 분노, 대화 중에 문을 쾅 닫고 들어갈 때, 버르장머리 없이 말대꾸 하고 쏘아볼 때, 핸드폰에 코 박고 불러도 대꾸도 안 할 때, 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 정도면 양반이죠. 며칠째 떡진 머리를 하고도 씻지 않고, 반대로 이성에게 눈뜨면 화장실을 한 시간 넘게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낮에 8~9시간 자는 아이들도 있고, 더 심한 경우 지각, 결석, 가출, 폭력을 불사합니다. 말을 해도 잔소리로만 받아치는 아이에게 부모는 화가 타오릅니다.

 이어서 부모는 배신감을 느낍니다.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걸 해줬는데’. 보상이나 대가를 바란 건 아니지만, 안하무인식으로 대드는 아이를 보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 꼴 보자고 너 학원비 대주고, 간식 사다 바치고, 철마다 여행 다닌 줄 알아?’ 아이에게 정성을 쏟은 만큼 배신감도 큽니다. 마지막으로 상실감을 느낍니다. 나에게 환하게 웃어 주던 아이, 공손하게 “네, 엄마.” 하던 아이, 틈만 나면 엄마 살을 비비던 아이는 이제 없습니다. 아이가 떠난 빈자리가 허전해 엄마는 자꾸 아이를 붙잡습니다. “문 좀 열어.” “말 좀 해봐” “안 그러던 애가 왜 그래?”. 같은 공간에 있지만 멀어져 버린 아이, 단단하게 연결된 끈이 툭 끊어진 것 같은 느낌에 엄마는 슬픔에 젖습니다.

 이런 감정들이 쌓이면 차분하던 부모도, 애정 넘치던 부모도 비난과 강요의 언어를 불사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아이의 사춘기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을까요?

사춘기, ‘병’이 아니라
‘성장통’이다

 ‘중2병’은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과 허세, 현실기피적 상상력을 비하하는 신조어입니다. ‘맘충’과 마찬가지로 비속어이지만, 요즘은 부모들도 자신의 자녀를 중2병이라고 하곤 합니다.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이죠. 그리고 이런 표현 속에 아이를 담는 한, 아이와 제대로 소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중2병이라도 사랑하고 싶어’ 중에서

 사춘기의 아이는 임신 시절의 우리와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감정 기복과 변덕이 심하며 예민하고 쉽게 짜증냅니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딸기를 사러 간 남편, 금세 순대가 먹고 싶다는 전화를 받아도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짜증 내며 순대에는 눈길도 안 줘도 싫은 내색 해선 안됩니다. 눈이라도 흘겼다간 “내가 그때 얼마나 서운했는데!”라는 소리를 오래도록 듣게 될 테니까요.

 임신 시절 우리가 호르몬의 노예였듯, 아이도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풀어가는 몸과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듯, 아이도 자신의 변화가 버겁습니다. 우리가 남편의 살가운 배려, 버스에서의 자리양보가 사무치게 필요했듯, 아이도 엄마의 이해와 아빠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임신과 마찬가지로 사춘기는 병이 아닙니다. 10달 동안의 불편한 동거를 거쳤기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를 만났듯이, 사춘기라는 혼돈의 시기를 거쳐야 아이는 어른이 됩니다. 어둡고 답답한 고치 안에서의 시간을 겪지 않은 애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을까요?

 사춘기는 어른이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의 시간이며(보기엔 싹퉁머리 없는 행동 일색이지만), 안에서는 뒤틀림과 재창조를 겪으며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중입니다.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부모가 만들어 둔 세상을 거부하고 탈출하는 것이 필연입니다. 그에 대한 섭섭함과, 무질서해진 아이 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아이에게 매달리고 강요하면, 아이는 더 세차게 부모의 세상을 벗어나려 합니다. 그러니 이때부터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부모도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가꾸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내주던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부부의 화합을 위해 써야 합니다. 특히 아래 3가지를 신경써 주세요.

아이의 행동을 바꾸기 전에
마음을 이해하세요

 아이의 꼴사나운 행동은 바로 눈에 띄지만, 복잡한 마음은 보려 해도 잘 보이질 않습니다. 사춘기 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행동 지적’입니다. “시험이 코앞인데 문제집은 펴 보지도 않고 잘한다, 잘 해.”, “너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어휴, 방 꼴 좀 봐라.” 이 말에 아이가 고분고분할 리가 없습니다. (고분고분해도 문제입니다. 정상발달 과정을 밟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아이는 20대, 30대에 가서 뒤늦은 방황을 겪습니다.) 행동 지적을 하기 전에, 그 행동을 한 아이의 마음을 살펴보세요.

행동 지적을 받았는데 고분고분할 리가 없죠!

 “안 봐도 뻔해요!”라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네요. 과연 그럴까요? 아이가 집에서보다 더 긴 시간을 밖에서 보내며, 아이가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는 결코 다 알 수 없습니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 하는 이면에 친구 관계에서의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닌지, 다 내팽개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내는 이면에 이성에 대한 고민이 있는 건 아닌지, 자꾸 늦게 들어오고 전화도 안 받는 행동이 시험에 대한 압박과 경쟁사회에서 느끼는 피로감 때문은 아닌지 먼저 살펴 주세요.

 행동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잘못된 행동은 반드시 고쳐줘야 하지만, 그 행동이 비롯된 마음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행동교정도 어렵습니다. 이미 어른인 듯 허세를 부리지만, 아직 부모의 지도와 가르침이 필요한 미성년자입니다. 문신을 하겠다고 하면 “그럴 거 면 집 나가!”가 아니라 “갑자기 왜 문신을 하고 싶어졌어?” 물어보세요.

자기돌봄, 집안일
학생의 기본을 가르치세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고 해서, 나쁜 행동도 다 받아줘야 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나친 게임, 줄어드는 수면시간 등으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정도라면, 행동 제재도 필요합니다. 단,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의 말처럼 “무엇을 하게 하는 법은 가르칠 수 있지만 못 하게 하는 법은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게임을 말리느라, 친구와의 외출을 말리느라 진 빼기보다는 올바른 행동을 가르치는 데 집중해 보세요.

 《게으른 10대를 위한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 장근영 박사는 10대 아이들이 꼭 해야 할 것을 3가지로 꼽습니다. 첫째는 건강에 대한 영역입니다. 건강하게 먹고, 최소한은 씻고, 충분히 자도록 가르쳐 주세요. 둘째는 가족에 대한 영역입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한 가정이 굴러가는 데 아이도 일정 부분을 맡는 것입니다. 숟가락 놓기나 자기 밥그릇 개수대에 가져다 놓기와 같은 작은 미션부터 설거지나 빨래 개기까지 아이에게 선택권을 줘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 맡게 해 주세요. 때때로 “엄마 허리가 아픈데 네가 재활용 쓰레기 좀 버려 줄래?” 약한 목소리로 부탁도 해 보세요. 아이는 툴툴대면서도 도움이 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세 번째 영역은 공부에 대한 영역입니다. 공부를 잘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분인 학생으로서 기본을 하라는 것이지요. 학교 규칙 지키기,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 선생님 말씀 잘 듣기, 숙제하기와 같은 것입니다.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기대를 아이에 맞게 조정해 보자

기준을 내 아이에 두세요

 사춘기 아이에게 부모가 화나는 것은, 아이에 대한 기대가 본격적으로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일탈하지 않기를 바라고, 이왕이면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길 바라고, 공부도 평균은 가길 바라고, 내심 부모의 관심과 노력을 알아주기를 기대합니다. 그 기대와 상관없이 자기 길을 가는 아이에게 “아니, 이 정도도 못 해?”라며 아이를 비난하게 됩니다.

 아이에게 화나고, 아이를 비난하게 되는 것, 모두 부모의 기대에서 비롯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
럼 기대를 버리라는 건가요?”라고 씁쓸하게 되물으시는데요. 기대를 버려라, 낮춰라가 아닙니다. 기대를 내 아이에 맞게 조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어릴 적 사춘기 시절도 되돌아보고, 사춘기 보편적 아이들의 특성도 살펴보고, 이 아이가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이 어땠는지(그때 쌓인 애착에 따라 사춘기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역사도 되돌아보는 거죠.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른 집에 비해 유별나게 우리 아이가 이상한 것도 아닐 거예요. 만약 평균에서 너무 어긋나 있다면 그것도 아이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테고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점만 자꾸 보면,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사춘기 내내 외로운 가시밭길을 걷게 됩니다. 부모는 기대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여하는 존재입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사춘기 자녀가 마음 둘 곳 없을 때 돌아와 기대어 쉴 수 있는 안락한 둥지입니다. 아이가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겪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다정한 관찰자입니다. 이제 아이에게 시시콜콜 가르칠 수 있는 때는 지났습니다. 감독 모자를 내려놓고 아이의 작은 성과에도 나팔소리를 울리고 아이가 실수했을 땐 총채를 흔드는 응원단장이 되어 주세요.

 마지막으로 아이의 사춘기는 부모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었어도 격렬한 사춘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무던하게 키워서 무던하게 지나가기도 합니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감히’라는 배신감만큼 ‘내가 너무 못 해줘서’ 같은 죄책감도 아이와의 관계에 독입니다. 사춘기를 겪는 자녀를 비난하지도, 사춘기 전에 충분히 잘해 주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지도 말고, 이 어두운 터널을 끝까지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결국엔 환한 태양을 만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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