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대화에도 황금비율이 있다!

아이와의 대화에도 황금비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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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전문코치

 2005년에 다큐멘터리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을 통해 존 가트만 박사의 ‘감정코칭’이 국내에 소개되었습니다. 그 후, 감정코칭은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하나의 분명한 육아 지침이 되었습니다. “감정은 수용하되 행동은 통제할 것.” 이 이론이 우리에게 충격이었던 이유는, 행복한 가족의 대화와 우리 현실의 격차 때문입니다. 35년 가까이 총 3천쌍의 부부 대화를 연구한 결과, 화목한 부부와 가족은 긍정적 상호작용이 부정적 상호작용의 5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지시나 충고, 지적질보다 5배나 많은 칭찬과 공감을 해 줄 때 이혼이나 불화의 위험 없이 안전한 가정이 유지된다는 것이죠.

긍정적인 말,
왜 어려울까?

 아무리 좋다지만,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뇌는 낯선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지요. 감정코칭은 낯선 정도가 아니라 거의 외국어 수준입니다. 우리 어릴 적 식탁 풍경을 한번 떠올려 볼까요? 어른들보다 먼저 숟가락을 들면 안 되고, 쩝쩝 소리를 내면 안 되고, 젓가락질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혼나는 공간이었습니다. 부모님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괜스레 눈치를 보며 쥐 죽은 듯 밥을 먹었습니다. 혹시라도 밥상이 엎어지면 안 되니까요. 그런 와중에 우리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었을까요? 밥과 함께 감정도 생각도 꾸역꾸역 삼켜야 했지요.

 우리의 부모 세대는 밥벌이와 공부 뒷바라지에 매진하느라 자식의 감정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는 채웠지만, 마음을 채우지 못한 채 몸만 어른이 되었습니다. “속상했구나.” 혹은 “그래, 그럴 수 있어.” 이런 말 한번 들어본 적 없이 자란 우리. 그런 우리가 내 아이에게는 감정코칭을 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잘 되는 게 이상하겠지요.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보이는 아이의 감정

 아이한테 매일같이 소리지르고 화내는 자신을 바꿔 보겠다고 화코칭 프로그램에 등록한 수희 엄마(가명)가 기억납니다. 준수한 교육을 받았고, 꽤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여리여리한 얼굴에 말도 참 나긋하게 하는 분이었는데요. 집에만 가면 하루 종일 떨어져 있던 아이들에게 괴물처럼 변하는 자신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더군요. 특히 첫째에게 소리를 많이 지른다고 했습니다. 자꾸 울먹이는 첫째를 보면 화가 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면 더 움츠러드는 아이를 보며 죄책감이 들고, 죄책감 들게 만든 아이가 더 미워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수희 엄마는 말했습니다.

 교육과정의 첫 과제는 바로 ‘감정일기’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동안 자신이 느낀 감정과, 그 감정의 이유,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지를 적는 간단한 기록을 통해 수희 엄마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기가 쌓일수록 회사와 시댁에서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집에 와서 아이를 쥐 잡듯 잡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감정에 무지했는지,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얼마나 빠르게 아이에게 전이시키는지를 알게 되었죠.

 수희 엄마는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그래!”라는 자신의 호통에 아이가 얼마나 불안했을지 그때서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불안이 보이니 말로 읽어주게 되고, 읽어주니 아이는 빠르게 진정이 되고, 그러니 엄마 마음도 쉽게 수그러들었습니다. 꽥꽥 소리지르는 매서운 엄마에서 마음을 읽어주는 다정한 엄마로 거듭난 비결은 바로, 감정일기를 통해 감정코칭의 원리를 자신에게 먼저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지식이 체화되는 데
필요한 시간

 “엄마 왜 화 났어?” 저녁 시간, 느릿느릿 먹는 아이들이 못마땅해 퉁명스러워진 제 말투에 아이가 묻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부드럽게 묻는 아이의 질문에 ‘아차’합니다. 부모교육을 하는 저이지만, 일로 지친 날이면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이고 공연한 트집을 잡습니다. 이유는 감정코칭이 오랜 시간 몸에 체화된 ‘암묵 지식’이 아니라, 머리로 받아들인 ‘형태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15살에 몸으로 익힌 자전거는 20년이 지나도 몸에 남아 있습니다. 자전거에 몸을 실으면 몸이 알아서 앞으로 나아가지요. 하지만 35살에 자전거를 처음 배운다면 어떨까요? 배우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립니다. 그사이 운동신경은 떨어졌고, 자의식은 더 강해졌으니까요. 넘어지는 부끄러움, 깨져서 아픈 무릎, 더딘 배움의 속도를 감수하지 않으면 자전거 타기는 물 건너 갑니다.

 감정코칭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제2외국어를 하나 익히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어만 35년을 써 왔는데 갑자기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하면, 기초적인 대화를 하기까지도 한참의 시간이 걸릴 거예요. 프랑스어를 몇 달 만에 익힐 수 없듯, 감정코칭도 몇 달 만에 되지 않습니다. 어려운 게 당연할 겁니다. 우리는 내 감정을 올바로 보는 법부터 새로 배워야 하니까요. 아니, 감정을 대하는 기존의 잘못된 태도를 버리는 것(탈학습, un-learning)부터 해야 하니, 프랑스어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잊지 말 것은,
사랑

 감정코칭 화법을 연습하는 여정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이 어려운 언어를 배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사랑’입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 이 아이를 사랑하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고요. 헌데, 아이가 엄마와 아빠의 이 깊은 사랑을 확실히 알고 있을까요? 자신 없는 분들 계실 거예요. 우리가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볼게요. 아이가 잘 안 먹고 키도 작다면 걱정이 됩니다. 더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 입맛에 맞춰 정성껏 요리를 해서 내놨는데 아이가 깨작대고 있다면? 처음에는 좋은 말로 하지만, 계속 안 먹으면 버럭 화를 냅니다. “됐어. 그럴 거면 먹지 마!” 날카로운 말과 함께 접시를 치우는 엄마의 손길은 거칠고 눈초리는 매섭습니다.

 기억은 감정과 깊은 연관이 있어서, 인간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더 깊이 기억합니다. 앞서 엄마가 했던 좋은 말, 예를 들면 “이거 맛있는 거야. 먹어 봐~”, “우리 딸, 쑥쑥 커야지. 골고루 먹자~”와 같은 말은 약한 정서를 가져오기에 아이가 기억을 못하지만, “먹지 마!”라는 엄마의 큰소리에는 무서움을 느끼고, 그 장면을 강하게 기억하게 되죠. 아이 마음엔 ‘엄마가 날 얼마나 사랑하면 저렇게 소리까지 지를까’가 아니라 ‘엄마한테 또 혼났어, 히잉’이 기록됩니다. 우리의 잔소리는 관심에서 오고, 관심은 사랑에서 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아이에게 언어로 저장되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배달사고가 빈번히 일어납니다.

잔소리에
사랑을 싣자

 백희나의 그림책 《알사탕》에선 주인공이 알사탕을 먹고 아빠의 속마음을 듣습니다. 아빠가 쏟아내는 수많은 잔소리가 사실은 ‘사랑해’의 다른 표현임을 아이가 알게 되죠. 우리가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도 사실은 사랑임을 아이들이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아이에겐 알사탕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 표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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