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을 기분 좋게 전하는 엄마의 말 연습법

‘말이 향기를 머금게 되는 날’

김애리 전문코치
마음빌더 코칭심리상담연구소 소장
광운대학교 대학원 심리학 박사

며칠 전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기분이 상했다. ‘괜히 전화했나’ 싶었다. 어릴 때는 나 혼자 들으면 그만인 잔소리가, 결혼 후엔 팀으로 듣게 된다. 딸 걱정, 손자 걱정, 사위 걱정까지 한 보따리 잔소리를 쏟아 내신다. 내가 엄마가 된 이후 가장 잘 견디는 것은 친정엄마의 잔소리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엄마를 닮은 나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 후 잔소리는 견딜 만한 것이 되었다. 한참 듣고 나니 세차게 유리창을 때리던 폭우도 그치고, 엄마의 폭풍 잔소리도 잦아든다. 어떤 말은 진실보다 예리하고, 의도보다 차갑다. 돌이켜 보면, 나도 아이에게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년에 수능인데 여태 그러고 있어?” “대학은 가겠니?” 말투 하나로 멀어질 수도 있고, 가까워질 수도 있다.

저녁 식사 시간, 남편에게 투정하듯 말했다. “엄마한테 괜히 전화했다가 잔소리만 듣고 기분만 언짢아졌어.” 옆에 있던 아들이 끼어든다. “엄마도 외할머니 잔소리가 싫어? 이제 내 기분 알겠지? 그래도 엄마는 다른 엄마들보다 덜하긴 해.”라며 위로를 건넨다. 말없이 듣고 있던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주겠다는 약속은 지켰는데, 눈에는 물을 묻혔네.” 남편의 유머에 웃음이 터졌고,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해 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언어학자인 허버트 폴 그라이스는 대화를 잘하기 위한 ‘대화의 격률’ 중 하나가 ‘양의 격률’이라 말한다. 지나치게 많은 말을 쏟아내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금세 피로해진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잔소리’ 아닐까? 실제로 잔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거나,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고 참견하는 말’이다.

한편 어떤 언어학자는 잔소리를 “맞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표현이라면 잔소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잔소리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돌이켜 보면 어릴 때 잔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와 듣지 않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된 후 생활양식이 달랐다.

부모들은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마라, 여자, 남자(사람) 조심해라”와 같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하곤 한다. 그때는 귀찮게 들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다만 반복해서 듣기가 피곤했을 뿐이었다.

여러 명의 자녀와 먹고 살기도 바빴던 예전과 달리 한두 명의 자녀와 함께 사는 요즘, 자녀를 있는 인격 그대로 존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맞는 말을 기분 좋게 하면 된다.

맞는 말도 기분 좋게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통 잔소리 버전으로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마, 그건 절도야! 걸리면 인생 망쳐!”라는 말보다는 품위 있는 잔소리로 “혹시 갖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내 것이 아닌 걸 참아 본 적 있니? 그 순간 마음 안에서 정직함이 자라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건 정말 멋진 일이야”라고 할 수 있다.

“여자/남자 함부로 만나지 마라, 잘못 만나면 인생 끝이야.”를 품위 있는 잔소리로 변환하여 “마음을 주고받는 건 소중한 일이야.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고 나 자신도 소중하게 여긴다면 사랑은 더 깊고 따뜻해질 수 있어. 관계를 시작하기 전에 책임을 먼저 생각해 보는 거야”. 품위 있는 잔소리는 상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 된다.

부모는 얼마나 우리 아이에게 솔직할까? 아이의 불만은 ‘부모가 솔직하지 않다’는 것이고 부모의 불만은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신이 기대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의 말투, 표정, 태도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부모도 때로는 아이만큼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 때가 있다. 아이에겐 그런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솔직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모른 체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서 숨은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고 아이의 모습이 거울이 되어 투영될 때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나무라게 된다.

“폰 좀 그만 봐!” 그러면 반드시 아이도 “엄마도 보잖아요?”, “아빠는 하면서 난 왜 안돼요?”라고 말한다. 아이들 또한 부모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는 이 말이 거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 솔직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마도 하면서!

아이들이 가르쳐 준 적 없는 행동을 할 때 부모는 종종 당황한다. 하지만 그 또한 유전의 경이로움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때때로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것이 불편하지만, 결국 그것은 관계를 지키는 힘이 된다.

의사소통의 가장 큰 핵심은 말보다 마음일 때가 더 많다. 부모가 솔직하지 않으면 아이도 솔직하기 쉽지 않다. 부모는 먼저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음으로 부모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위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다.

“그래, 맞아 엄마도 많이 봤지, 엄마는 폰을 너무 오래 보는 네가 걱정이 돼서 그래”라고 진심을 꺼내야 한다. 인정만 해도 아이는 수긍이 된다. 이 방법은 매우 예후가 좋은 방법이니 꼭 한 번 실천해 보기를 권한다.

부모가 품격 있게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도 따뜻한 말투로 어른들의 말에 호응할 수 있게 된다.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거지 된다”라고 한다면 “엄마도 공부 안 했는데 거지 안 됐잖아요?” 아이의 마음속에 이런 불신이 생긴다면 더는 원활한 의사소통은 어려워진다.

이제는 이런 대화의 형태는 멈추어야 할 때이다. 품격 있게, “엄마는 어릴 때 공부를 안 해서 어른이 되고 나니 후회가 되더라, 그때 좀 열심히 할걸, 네가 엄마 나이가 돼서 후회하면 속상할 것 같아, 오늘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기회니까”. 협박보다 인정함으로 말의 품격을 더하는 것이다.

부모는 “너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어, 함께 방향을 잡아보자”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문장이기에 막상 하려고 하면 낯간지럽거나 어색할 수 있지만, 자주 하면 그것이 곧 품격이 된다. 부모는 기꺼이 아이와 함께 삶의 지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길을 잘 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솔직한 기원이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겠지만, 자주 하면 품격이 된다

꽃씨를 뿌리듯 한 단어 한 단어를 잘 심어 아름다운 꽃이 되기를 바라며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은 입 안에 있을 때는 무향무취지만,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유기체가 된다. 꽃을 심으면 향기를 내뿜게 되고 독초를 심으면 독기를 뿜게 되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풍수지리에서도 향기를 성공의 비법 중 하나로 꼽는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좋은 향기가 난다면 그 공간은 좋은 기운이 흐르는 곳이라고 말한다. 대화의 문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 얼마나 향기로운 기운이 깃들어 있는지 우리는 늘 점검해야 한다.

특히 부부의 대화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염된다. 오은영 박사의 『불안한 엄마와 무관심한 아빠』라는 책 제목처럼 부부의 온도 차이는 갈등을 일으키기 충분하고 그 갈등의 언어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복제된다. 정서를 잘 돌보지 못하면 내 마음 안에서 꽃은 자라지 못한다. 꽃처럼 예쁘고 귀한 우리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꽃밭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마음 토양이 건강해야 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올바른 품성을 지니고 사회 속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세대 간의 간극은 커지지만, 진정으로 존경받는 태도와 모범이 되는 행동은 시대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 시작은 바로 ‘말’이다. 좋은 품성은 말에서 비롯된다. 그 말은 곧 자존감을 키우고 자신감을 북돋우며 타인과의 관계에 품격을 더한다.

부모의 숨기고 싶은 감정,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도 아이는 닮아 있기에 아이들은 부모의 비밀스러운 감정들까지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존재이다. 아이는 부모의 비밀스러운 곳곳에 숨어 있는 유전자들의 총체이다. 그러니 부모는 자신의 숨은 감정을 먼저 헤아리는 것에서부터 좋은 대화가 시작된다.

아이는 우리 부부의 재료로 빚어낸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말은 도구이기 이전에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성향, 다른 말투, 다른 속도, 다른 표현 방식 속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한 가지는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이다. 탁월한 의사소통의 기본은 말보다 먼저 마음이며, 원활한 관계의 기본은 ‘너 말고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기품 있게 전하는 부모의 말은 성품이 자라는 곳이며 바로 그곳이 우리 아이들의 품성이 머무는 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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